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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충;동 예술충;동

<수원문화재단에서 진행했던 지역 공공예술 프로젝트​>

 시각장애인들은 저마다 섬이되어 안개 속에 숨어있다. 그런데 햇살이 따뜻해 안개가 걷힌 맑은 날에도 그들은 좀처럼 밖에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지하철도 타는 일이 없고, 작업실과 시내나 공원, 전시장 위주의 생활반경을 가진 나의 삶에서는 도무지 그들을 볼 수 없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혹시 우리를 술래삼아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그러나 호기롭게 숨바꼭질 고수들을 찾아나선 나는 결국 누군가의 가사처럼 울음을 터뜨리며 외쳤다.

 

"못찾겠다 꾀꼬리!"

<못찾겠다 꾀꼬리에 대한 작업노트> 2021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우뚝 선 회갈색 고성 뒤로 짙은 파랑이 하늘 가득 칠해진 어느 가을. 고성처럼 오래된 골목 사이로 한 아이의 목소리가 청량하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술래가 얼굴을 가린 채, 벽에 기대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가 울려 퍼지는 사이 한 소년이 소녀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넌 어디 숨을 거야?"

 

소녀는 이 동네에서 숨바꼭질을 가장 잘하는 아이다. 그 실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단 한 번도 술래가 된 적이 없었다. 소녀는 알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살짝 웃어 보이고는 어디론가 뛰어가버렸다. 술래는 친구들의 발소리와 키킥거리는 웃음소리를 향해 비장한 말투로 으름장을 놨다.

 

"이제 찾는다아!"

 

“아, 잠깐만!”

 

아직 숨을 곳을 정하지 못한 아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다시 술래는 노래를 불렀다. 아까랑 다르게 맑고 청량했던 노래는 왠지 모르게 슬픈 단조로 변한 것 같기도 했다. 몇 번을 더 반복한 술래는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외쳤다.

 

“이제 찾는다아아!!”

 

 

 

골목에 긴 적막이 흘렀다.

아이들은 저마다 생각해둔 비밀장소로 향했다. 한 아이는 나무 위를 오르려다 다른 곳으로 바삐 뛰어갔고, 어떤 아이는 골목길 우체통 뒤에, 그리고 또 다른 아이는 자동차 바퀴 뒤에 모양을 맞춰 숨었다.

 

소녀는 동네의 오래된 창고 앞에서 고개를 든 채 좌우를 슬쩍슬쩍 살폈다. 누구를 찾는걸까? 아니면 비밀 장소를 들킬까봐 경계를 한걸까?

 

창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창고 문을 덜컥 열었다. 갑작스러운 소녀의 방문에 놀란 듯 창고 바닥에 있던 작은 먼지들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먼지 냄새가 났다. 왠지 모를 안도의 숨을 내쉰 소녀는 혹시라도 술래가 들이닥칠까 구석으로 들어가 쪼그려 앉았다.

 

소녀의 머리 위에는 갈라진 지붕 틈으로 끼어든 옅은 빛줄기 하나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소녀의 발꿈치에는 깨진 바닥 사이로 올라온 작은 풀 하나가 웃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도망쳤던 작은 먼지들이 다시 빛 사이로 모여들었다. 벽에 기대앉아있던 소녀의 눈꺼풀이 점차 느려졌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때, 소녀의 엉덩이에 깔려 있던 그림자가 낑낑대며 옆으로 빠져나왔다. 주변을 살피던 그림자는 서둘러서 어디론가 도망을 쳤다.

 

 

깜빡 졸았다.

눈을 떠보니 소녀는 낯선 숲 속에 앉아 있었다.

몽롱했다.

습기 가득한 숲 내음이 점차 강해졌다.

놀란 소녀는 그제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듬성듬성 빛이 내리던 곳에 맑은 꽃이 피어있었다.

이상했다. 무엇보다 빛 내림이 있는 곳 아래 자신의 모습이 가장 낯설었다.

 

이런, 이제 보니 그림자가 사라졌다.

 

그림자를 찾아야 했다.

소녀는 빛이 내리고 꽃이 피어 있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 걸을수록 나무들의 키가 하늘을 가리울 정도로 점점 커졌다.

 

걷다 보니 어느샌가 빛도 사라졌고, 뿌연 안개가 온통 자욱이 깔려 있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지역에 들어선 소녀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 소녀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팔을 벌려 스치는 나뭇잎들을 느꼈다. 작은 발로 더듬듯이 걸었다.

 

특별했다.

매우 더디게 걸었지만, 대신 아주 작은 것들까지 다 느낄 수 있었다.

발 밑에 기어 다니는 벌레들의 발소리,

풀잎 위에 앉아있던 이슬이 손끝에 닿는 느낌,

나무 위를 뛰어다니는 다람쥐들의 속삭임,

저 멀리 노래하는 새들의 예쁜 깃털,

온 세상 가득한 짙은 안개의 목소리까지도 들리는 것 같았다.

 

소녀는 짙은 안갯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것들을 보고 있었다. 용기를 얻은 소녀는 점점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아니, 달리기 시작했다.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숨도 차지 않았다.

소녀의 발이 땅을 디딜 때면 저 높은 하늘 위까지 오르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쿵!!

 

어딘가에 부딪혔다. 소녀의 눈에 한 늙은 신사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소녀는 풀밭에 누워있었다. 아마 늙은 신사와 부딪힌 모양이었다.

 

“너 누구니?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큰 소리로 신사가 물었다. 그러나 놀란 소녀는 토끼눈만 뜬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신사는 벗겨진 선글라스를 고쳐 쓰더니 가만히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번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불쌍한 것, 그림자를 잃어버린 모양이로구나...”

 

토끼눈을 뜨고 있던 소녀는 신사의 말에 더욱 놀라 얼음이 되어버렸다. 신사는 얼어붙은 소녀를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가방에서 무언가를 찾아 소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곳은 안개지역이야. 어린아이가 올 곳도 아니고 뛰어다녀서도 안 되는 곳이란 말이야. 그리고말이야, 안개지역에서는 이게 필수야. 자, 여기 선물.”

 

소녀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선물이라는 말을 듣고는 얼떨결에 작은 상자를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부디 꼭 이 안개지역에서 빠져나가길 빌마”

 

늙은 신사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순식간에 깊은 안갯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소녀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까 그 신사와 너무 세게 부딪힌 걸까, 좀처럼 걸을 용기가 나질 않았다. 소녀의 걸음이 우스워졌다.

 

아니, 걷는다기보다 발가락으로 땅을 이리저리 더듬는 모양이었다. 앞으로 가던 발은 겁쟁이 고양이처럼 이리저리 더듬다가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소녀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소녀의 자신감 넘치던 마음은 딱딱하게 굳어버렸고, 상쾌했던 발걸음도 순식간에 닫혔다. 결국 소녀는 그림자도 없이 짙은 안개지역에 갇히고 말았다.

 

 

답답한 안갯속에서 소녀는 아까와는 다른 것들을 느끼기 시작했다.

 

거대한 동물의 거친 숨소리와,

코를 찌르는 시큼한 냄새와,

기분 나쁘게 질러대는 새의 비명소리와,

공포스러운 안개의 속삭임에 소녀는 눈물이 쏟아지고야 말았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훌쩍거리는 소리 하나 없이 눈물만 쏟았다.

 

그런데 정작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답답함보다 혼자 남겨졌다는 외로움이 소녀를 더 아프게 했다. 소녀는 아까 늙은 신사를 떠올렸다. 친절하진 않았지만 그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가 준 선물이 머릿속을 스쳤다. 주머니 속에 있던 작은 상자를 열자 독특한 모양의 선글라스가 있었다. 소녀는 아무 생각 없이 선글라스를 써보고 깜짝 놀랐다. 세상 모든 것이 선명한 그림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늘로 길게 뻗은 나무들과, 그 가지에 열려있는 큼지막한 열매들이 보였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림자들 사이로 저 멀리 이곳을 비추는 선명한 빛줄기가 보였다.

 

그림자와 빛을 마주하는 기쁨에 소녀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소녀는 다시 용기를 내 뛰기 시작했다. 빛이 오는 방향, 그곳으로 가면 무사히 안개지역을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숨이 차오를 정도로 힘차게 뛰는데 어디에선가 작은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리둥절해하는 소녀가 달리기를 멈추자 소리는 더욱 커졌다. 단순한 그 노래는 가사도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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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점점 커졌고, 부르는 이들도 점차 많아졌다. 그리고 이내 선명하게 들려왔다.

 

“못 찾겠다 꾀꼬리! 못 찾겠다 꾀꼬리!”

 

갑자기 온 세상이 환하게 밝아졌다. 눈을 뜨자, 소녀는 그제서야 자신이 창고 구석에서 잠들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엔 몽롱하지도 않았고, 바닥이 온통 풀밭도 아니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있던 소녀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여기저기 붙어있을 먼지들을 툭툭 털어내고는 서둘러 창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창고 문을 열자 어두컴컴한 창고 안으로 붉은빛이 한가득 쏟아졌다.

 

 

 

“못 찾겠다 꾀꼬리! 못 찾겠다 꾀꼬리!”

 

 

 

“못 찾겠다 꾀꼬리! 못 찾겠다 꾀꼬리!”

 

 

“못 찾겠다 꾀꼬리! 못 찾겠다 꾀꼬리!”

 

“못 찾겠다 꾀꼬리! 못 찾겠다 꾀꼬리!”

 

“못 찾겠다 꾀꼬리! 못 찾겠다 꾀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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